[연합시론] 치열한 북미 간 ‘기 싸움’, 우리 중재 역할 커졌다

[연합시론] 치열한 북미 간 ‘기 싸움’, 우리 중재 역할 커졌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남·북·미 당사국 간에 치열한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면서 방법론으로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언급한 이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미국 내 강경파 사이에서 북핵 해법으로 거론돼온 리비아식 선 핵 폐기, 후 보상에 대한 분명한 거부로 해석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이미 타결된 것으로 발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에 대한 서명을 북핵협상 이후로 미룰 수도 있다고 했다. 북핵 해결과 무역협정을 연계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30일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견을 전제로 했지만, 트럼프 발언과 맞물리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드러난 것만 놓고 보면 혼란스럽고 접점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이 이런 입장을 그대로 들고 정상회담장에 들어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종의 탐색전이자 기 싸움일 가능성이 큰 만큼 우리 정부는 차분한 자세로 최선의 중재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다소 뜬금없다는 느낌을 준다. 오하이오주 리치필드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연설을 통해 “한국과 훌륭한 합의를 얻어냈다”고 한미FTA 개정을 평가하면서도 “북한과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서명을 미룰 수도 있다”고 했다. “이것이 매우 강력한 카드이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야말로 돌출발언이어서 우리 정부도 진의를 파악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듯하다. 한미가 원칙적으로 합의한 FTA 개정에서 더 많은 양보를 얻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북미회담을 겨냥한 것인지 맥락이 불분명하다. 전문가들은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한미 공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냐는 쪽에 방점을 찍고 있는 듯하다. 북한의 단계적, 동시적 해법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철저히 공조하지 않으면 FTA 개정 합의를 재고하겠다는 취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외교·안보 문제라면 한미 간 신뢰에 흔들림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럴 가능성을 낮게 봤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화법인 만큼 섣불리 예단하지 말고 백악관 측의 추가 설명을 기다려야 봐야 할 것 같다.
리비아식 해법을 사실상 반대한 청와대 핵심관계자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 거의 비슷한 시점에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든, 일괄타결이든, 리비아식 해법이든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방식을 상정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검증과 폐기는 순차적으로 밟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세하게 잘라서 조금씩 나갔던 것이 지난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두 정상 간 선언을 함으로써 큰 뚜껑을 씌우고 그다음부터 실무적으로 해 나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과거 협상 때 사용한 ‘살라미 전술’을 수용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큰 덩어리로 나눠 단계적 조치를 밟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겹치면서 미국 대신 북한의 비핵화 방법론을 두둔한 것처럼 들리지만, 꼭 그렇게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 해도 체제 보장 없이 핵 포기를 선언할 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북미가 자신들의 해법을 고집하다 정상회담조차 무산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미리 입장 차이를 좁히게 유도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북한 비핵화는 앞으로 있을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현 가능한 비핵화 해법이 도출되지 않으면 다른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런 만큼 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해법을 놓고 치열하게 견제하고 줄다리기를 하며 기 싸움을 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논란이 있더라도 이를 통해 서로 입장 차이를 좁히고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우리 정부의 비핵화 구상에 대해 “우리 생각이 있다기보다 중재자로서 서로 다른 생각을 조정하고 타협 지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어떤 방식이든 비핵화 타결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북미 간의 간극이 큰 만큼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재자로서 책임과 역할이 더 막중해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