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 건축의 미래를 설계하다”

어느 저명한 건축가는 건축을 가리켜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의 삶 대부분이 건축물 안에서 이루지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물은 시대정신으로 표현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래된 낡은 건축물, 작은 벽돌 하나에도 당대 건축가들의 철학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당시의 건축 기술과 문화, 정신세계 등 다양한 그 모든 것이 한데 녹아들어 하나의 집합체를 이룬다.

오토바이를 타고 프놈펜 시내 구석을 천천히 돌다 보면, 차를 타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새로 지은 고층빌딩 사이로 옛 프랑스 식민 시절부터 앙코르제국 시대 이래 제2의 황금시대로 불리던 과거 50~60년대 지어진, 매력적인 건축물들과 조우할 때도 가끔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루비 같은 값비싼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기쁨의 희열과 쾌감을 느끼곤 한다. 100년이 넘은 오래된 식당 바닥에서 멋진 타일조각을 우연히 만났을 때도 그러했고, 프랑스 식민 시절 지어진 노란색 페인트칠을 한 건물부터 캄보디아 건축의 대가로 불리던 완 몰리완이 설계했다는 독립기념탑 천정 꽃무늬 장식과 짜토목 국립극장 2층 발코니를 처음 감상할 때도 그랬었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빚어낸 건축물에선 예술가로서의 투혼과 그들이 평생 추구한 건축에 대한 철학과 시대정신이 느껴져 나의 메마른 감성을 자극하곤 한다. 스토리가 풍부한 도시, 내가 프놈펜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다소 우울해지거나 분노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들도 더러 있다. 오로지 경제적인 논리와 거주자 중심의 편의성이란 함정에 빠져들어, 과거 아름다웠던 도시 프놈펜의 옛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낄 때다. 이 도시에 애정을 갖고 사는 누구라도 느꼈을 법한 감정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도시 프놈펜에 현대적이면서도 젊은 감각을 갖춘 실력 있는 건축가가 프놈펜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더욱이 유럽인인 아닌 동양인, 게다가 같은 핏줄을 나눈 한국인이란 사실에 마음이 더욱 더 끌렸다. 파리에서 공부한, 전도유망한 건축가 마윤정이다.

햇살이 따가운 아침, 오토바이를 타고 메콩 강변 뒷길 골목길을 따라 조금 헤맨 끝에 그가 일한다는 ‘MAA 건축&디자인’ 사무실을 찾아갔다. 내부는 작고 아늑했다. 구운 벽돌로 장식을 한 실내의 아늑한 내부인테리어와 나무계단 난간도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좋았다. 눈에 익숙한 풍경은 현지인 직원 대 여섯 명이 숨소리도 없이, 모니터 화면만을 응시하며, 뭔가 분주히 일하는 모습 정도였다.

오전부터 바쁜 일처리를 하느라 책상을 미처 정리하지 못했다고 웃는 건축가 마윤정씨는 무엇보다 밝은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서류 뭉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수북이 놓인 책상을 치우려 했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애써 말렸다. 가끔은 잘 정돈된 책상보다 이렇게 치열해 보이는 책상이 보기 좋을 때도 있다. 책상 주인의 평소 성격과 더불어, 열정 그리고, 진솔함이 함께 묻어나기 때문이다.

커피 대신 시원한 물 한 컵을 부탁했다. 캄보디아에 온 것은 5년 전 쯤 전이라고 그녀가 대답했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20대 젊은 나이 혈혈단신 파리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오랫동안 건축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설계사무소에 취직했다가, 2012년 무렵 자신의 이름을 딴 건축디자인사무소를 열기도 했다.

건축설계 전문가로서 대단한 커리어와 실력까지 겸비한 그가 캄보디아에 오기로 결심하게 된 동기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의외로 매우 간단했다. 프랑스에 머물던 시절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던 캄보디아 친구의 소개 덕분이란다. 예술과 건축 문화의 본고장에서 쌓아 온 대단한 커리어를 포기하고, 가난한 이 나라까지 와서 건축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건 건 보통 용기와 결단이 아니라면 결코 쉽지 않았을 선택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 길을 택했다. 눈빛에서 여성 특유의 섬세함 못지 않게, 숨길 수 없는 강한 자신감도 발견할 수 있었다.

30대 중반에 들어선 이 젊은 건축가는 프놈펜으로의 정착을 결심한 후 얼마 안 돼 곧바로 건축디자인사무실을 차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곳에서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만났다. 같은 사무실에서 조경분야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프랑스 출신 조경전문가가 바로 그녀의 남편이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가 손수 만든 포트폴리오 작품집에 실린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자상해 보이는 훈남이었다. 프랑스에서 농경학 석사학위를 받은 남편은 현재 조경분야 전문가이자 정원 디자이너이다. 그의 남편은 일과 사랑을 공유하기 더없이 훌륭한, 이상적인 파트너로 보였다. 남편 이야기를 할 때마다 겸연쩍어 하면서도 순간순간 그녀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곤 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공동 작업으로 다양한 건축프로젝트를 훌륭히 완성해냈다. 이를 통해 점점 도식화되고 매너리즘에 빠진 프놈펜의 건축 문화에 새로운 활력과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완성된 건축 작품들 역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직접 설계한 건축물 3D 영상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젊고 현대적인 감각과 더불어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공들여 만든 작품들에 대해 많은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손수 인테리어를 한 작품 중 몇몇이 주인의 관리 소홀로 인해 망가지기도 했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메콩 강변에 위치한 유명 제과점인 ‘블루 펌프킨’도 그 중 하나다.

가족관계는 일부러 묻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페이스북에 몰래 들어 가봤기 때문이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마유정씨는 지난 5년간 설계사무소를 운영해보며, 일과 사랑을 병행하고 있었다. 프놈펜에서의 소소하면서도 행복한 삶이 포스팅한 사진들 속에 묻어났다.

건축설계전문가인 그녀에게 현재의 프놈펜 도시 건축의 현주소에 대해 물었다. 예상대로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무더운 도시에 낮에 그늘로 쉴만한 제대로 된 정원도 없고, 산책길 공원에도 나무와 꽃, 식물을 볼 수 없어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평소 기자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산책할만한 공원도 마땅치 않고, 갈수록 성냥갑처럼 만든 비슷비슷한 건축물로 온통 뒤덮이고 있는 이 건조한 도시를 과연 누가 좋아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어떤 건축물을 짓고 싶냐고 물었다.

그녀는 “나뭇잎과 새소리, 바람과 같은 자연의 소리는 물론, 오후 무더위를 식힐 수 있는 작은 그늘이 있는 공간과 쉼터가 늘 항상 우리 곁에 있는,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이 조화를 이루고 공존하는 그런 건축 작품들을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 그녀는 여력이 닿는다면, 자연이 함께 살아 쉼 쉬는 도시조경을 갖춘 공원도시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도 함께 나타냈다.

아쉽게도 이날 다른 선약이 있어, 마윤정씨와의 대화는 길게 이어가지 못했다. 대신 짬을 내 그가 만든 프놈펜 시내 작품들을 하나 둘씩 둘러볼 계획을 세웠다.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로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I.M.Pei)씨는 건축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삶은 건축이고, 건축은 삶의 거울’이다.

우리 삶속에 투영된 건축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시대를 대표하는 훌륭한 건축 작품이 늘수록 그 건축물들의 집합체인 도시는 살만한 곳이 되고, 그 속에 사는 인간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윤택해지는 법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작품들도 대단하지만, 젊고 전도유망한 건축가 마윤정씨가 앞으로 그려나갈 프놈펜의 미래 작품들이 벌써부터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그녀가 만들 현대적 감성의 멋진 건축 작품들로 인해, 도시 인간의 삶이 보다 풍요로워지길 바라며, 그녀의 손길에 자연이 숨쉬는 그런 아름다운 도시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정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