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소주, 동남아 인기 몰이 이유는?

정체 상태에 놓인 국내 소주 시장을 타개하기 위해 국내 소주 업체들이 6억 인구의 거대 시장, 동남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 내 소주 소비는 지난 2015년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업계 입장에선 큰 위기가 닥친 것이다. 주 5일 근무제 정착으로 인해 기업 회식이 줄어들고, 국내 인구의 감소와 함께 소주 대신 수입맥주를 선호하기 시작한 음주 문화의 변화도 국내 소주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같은 국내 소주 시장의 한계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동안 국내 소주 시장을 양분해온 롯데주류(대표 이종훈)와 하이트진로(대표 김인규)가 최근 한류 열기로 뜨거운 동남아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동남아 진출 교두보를 처음 마련한 것은 하이트진로였다. 하이트진로는 2016년 베트남에 법인을 설립하면서 현지 시장진출에 열을 올렸다. 지난 해 ‘진로포차 1호점’을 오픈하는 등 다양한 프로모션 활동도 진행 중이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나이트마켓에 안테나숍(상품의 판매 동향을 탐지하기 위해 메이커나 도매상이 직영하는 점포)을 운영하며 현지시장 공략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남다른 공을 들이고 있다.
또한 하이트진로는 지난 11월 21부터 23일까지 캄보디아 연중 최대 이벤트인 물 축제 기간에 ‘Jinro 360°’ 라는 이름으로 EDM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현지 교민 연예기획사인 케이브 엔터테인먼트(대표 정금석)와 현지 기업 콤마엔터테인먼트가 공동주관한 이 행사에는 3일 동안 3만여 명이 페스티벌을 찾았다.
아시아권에서 인기가 높은 DJ 소다를 비롯해, 한국 캄보디아, 라오스를 대표하는 정상급 DJ 15명이 총출동했다. 현지 케이팝 인기 몰이에 견인차 역할을 해온 현지 남성 아이돌 그룹 ‘원탑’과 4인조 신인 여성 힙합그룹 ‘로즈핑거’도 특별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다.
행사장 주변은 축제 기간 내내,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회사 로고가 새겨진 홍보물로 가득해 눈길을 끌었다. 맥주 안주로 유명한 땅콩을 소주와 곁들여 먹거나, 소주에 얼음을 타 먹는 현지인들의 모습도 무척이나 이색적이었다.
그동안 국내 소주업계는 주로 현지 교민들을 상대로 영업을 펼쳐왔다. 교민 대상 매출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류 열풍 덕분에 현지 시장에서의 소주 소비가 빠른 속도로 늘기 시작했다. 하이트진로측은 지난해 소주 매출이 160% 늘어난데, 이어 올해도 100%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내 소주 시장의 또 다른 축이자 최대 라이벌인 롯데주류도 동남아 진출에 적극 가세한 상태다. 롯데주류는 올 3월 베트남 다낭 국제공항 면세점에 ‘처음처럼’을 입점했다. 한국 술 문화와 유사한 베트남 시장에 ‘처음처럼’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강화 중이다. 롯데주류 측에 따르면 ‘처음처럼’은 베트남에서 지난 5년간 연평균 27%씩 매출 성장을 거두었다. 캄보디아에서도 ‘처음처럼’은 교민 애주가들뿐만 아니라, 현지 젊은 층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새로 출시한 ‘순하리’ 등 일반 소주보다는 도수가 낮고 포도와 체리 등 과일 맛이 나는 소주가 현지 젊은이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렇듯 한국산 소주가 동남아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 건 국내 소주 회사들이 치열한 홍보판촉전을 벌인 것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캄보디아의 경우 주세가 거의 붙지 않아 현지 마트에서도 한국산 소주의 판매 가격은 2달러 내외 수준에 불과하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현지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주가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온 수 만여 명의 베트남과 캄보디아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소주가 캄보디아 전국 각지에 알려진 게 한국산 소주매출 증가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소주와 맥주를 섞는 한국의 독특한 ‘소맥’ 음주문화에 길들여지고, 삼겹살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소주라는 인식이 현지인 근로자들 머릿속에 생긴 덕분이다.
소주의 인기 덕분에, 현지 마트에서도 언젠가부터 삼겹살 부위가 유독 잘 팔리기 시작했다. 불과 수년 전만해도 살코기 대신 지방이 많은 삼겹살은 돼지고기 부위 가운데서 그다지 선호하는 부위는 아니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프놈펜 무역관 김동준 차장은 “지난해 기준 한국산 소주의 해외 수출량은 여전히 미국과 일본, 중국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뒤를 이어 베트남이 4위, 필리핀이 5위, 태국이 7위, 캄보디아가 10위를 차지하는 등 동남아 시장이 점차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일본, 중국에 비해 교민 수가 상대적인 지역임을 감안하면, 한국산 소주가 현지 시장 공략에 상당히 성공했음을 지표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캄보디아의 경우 한국산 소주의 수출은 지난 2016년도 19만 달러에 이어, 2017년에는 85만 달러로 크게 늘었으며 올해는 1월부터 지난 10월 말까지 86만 달러 어치가 수출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미 지난해 연간 수출 총액을 넘어선 수치다. [박정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