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시간이 가르쳐준 그만의 영업 비법, 베트남 내 공단 전역을 상대하는 한 창 우 대표

고된 시간이 가르쳐준 그만의 영업 비법, 베트남 내 공단 전역을 상대하는

한 창 우 대표 his,story

April 22, 2016


한국 정비공장을 기반으로 지게차 및 발전기 판매 딜러로서 입지를 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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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우 대표가 운영하는 한국 정비공장은 새롭게 미국 브랜드 LONGWIN 지게차를 판매하며 홍보에 나섰다. 베트남 내에서 브랜드 LONGWIN의 판매권을 인정받은 첫 대리점이다. 기존 판매하던 지게차보다 뛰어난 성능을 지니면서도 단가에선 중국산 제품의 허무맹랑한 가격을 표방한다. 공임 등 중간 과정에서 유통 차액을 덜 가져가며 고객의 만족을 목표로 품질과 브랜드는 미국산, 가격은 중국산의 저가를 지향한다. A/S 부분에서도 여타 비슷한 업체들이 중국산이나 베트남 현지의 저가 엔진오일을 사용하는 반면에 한 대표는 한국 브랜드 GS 엔진 오일을 고집한다. 들여오는 원가는 당연히 비싸다. 그렇지만 고객의 손엔 다른 업체와 동가의 금액이 책정된 견적서를 쥐여준다. 오일뿐만 아니라 어떤 부속품이라도 마찬가지다.

가족 확대

최근 한국 정비공장은 지게차 판매·유통 및 A/S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인터뷰 중 내게 권유한다.‘갑’과 ‘을’의 관계에서‘을’이‘갑’에게 줄 수 있는 것 중 최고는‘미안함’이다.‘갑’이 미안해질 때, 너는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신뢰,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 의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이다. 미안한‘갑’은‘을’의 재능이나 상품에 그에 상응하는 가격을 지불하며 동반자적 위치에서 지속적인 거래를 원할 것이다. 지게차 발전기 등의 중장비 판매 딜러로서, 만 불을 A/S로 인해 손해를 보더라도 끝까지 달려든 그의 자세와 고객사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 분야에서 입지를 단단히 굳혀가고 있다. 그의 삶엔 분명 철학이 있다. 그래서 사담을 섞어가며 한 대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운영 철학에 대해 궁금하던 중 한 대표의 지난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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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고교 시절 담임선생님은 예비 수능 점수가 나온 어느 날 그를 교무실로 불러들였다. 담임은“지방대에 수석으로 입학할 수 있으니,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니라”고 권유했다. 이러한 얘기를 들은 한 대표의 부모님 또한,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가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파일럿이 되고 싶었지만, 가계를 돌보는 것 또한 중요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신문 배달과 가스통을 6층 건물 옥상까지 들고 오르내리는 중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신문 배달 일을 할 당시는 학원 수업을 듣고 집에 오면 9시나 10시 정도의 시간이었다. 꿈을 위해 등록한 항공기술학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고 나면 12시를 넘어 하루가 또 지나갔다. 잠자리에 들면 깊은 잠에 빠져들어 쥐 죽은 듯 잔다. 그러나 그는 어김없이 새벽 3시가 되면, 미명이 채 밝기도 전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총총히 별빛을 받으며 다시 신문 보급소로 향했다. 흔한 자격증도 아니었고 총 8개월의 과정을 수료하고 1차, 2차 시험에 합격해야만 자격증이 주어졌다. 단번에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곧바로 활용하지는 못 했다. 몸은 힘들어도 돈이 더 됐기에 하루 12시간 동안 가스통 배달하는 일을 했다.

그에게는 오늘과 내일의, 지금과 나중의 경계가 없었다. 지금 눈앞에 현실, 절실히 해야 할 오로지 그 한 가지에 온 정신과 노력을 쏟았다. 그것은 꿈이고 그것은 그렇게 매시간 매초 축적되며 실현되어 갔다.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중 교통사고로 인해 왼쪽 발목 인대 일부를 도려내야 했던 시련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논산훈련소로 당연한 듯 입영을 하게 된다. 특이한 그의 신상정보 기재 사항. 항공 기관정비 자격증. 그 사항이 눈에 들어왔던 인사참모는 직접 논산훈련소로 차를 몰고 방문해 한 대표를 자신의 예하 부대로 아무 설명 없이 데려가 버린다. 사랑했던 연인과 혼담이 오가는 중 모아둔 돈과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장기복무를 선택했다. 보다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기술을 습득하고 다양한 장비를 관리하게 될 시간이 생긴 것이다. 이는 현재 베트남 현지에서 중장비의 정비와 판매에 관련한 일을 하게 된 기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개인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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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임기를 다 채우고 사회로 다시 뛰어든 그에게 IMF라는 큰 시련이 닥쳤다. 많은 빚을 갖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 평소 한 대표를 성실하게 본 신문 보급소 지국장의 알선으로 보급소 내에 전단지 광고를 독점해 유통할 수 있었다. 이 또한 이곳에서 지게차와 발전기를 판매하고 사후 관리를 하는 현 사업을 하는 것의 밑바탕, 경험이 되었다 볼 수 있다. 당시 가지고 있던 빚을 다 갚고도 꾀나 큰돈을 만졌다. 돈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는 아내와의 불화로 이혼을 하게 된다. 아내는 양육권마저 바로 포기해버리고, 만약 아이를 키우라고 하면 고아원에 데려다 버릴 것이라고 남편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지금은 20대 처녀가 된, 그 어린 딸의 유년기를 한 대표는 살뜰히 보살폈다. 부모님과 형제의 권유로 지금의 베트남 현지인 아내를 만나 두 아이를 슬하에 둔 한 대표는, 당시 광고바닥에 얽힌 이권으로 건달의 협박을 받으면서도 가스통과 라이터를 들고 쫓아가 맞설 정도로‘깡’과‘악다구니’로 자신의 이권을 지켰다. 무엇보다 그를 신뢰하는 광고주들이 있었다. 건달과 연계된 광고회사는 광고주들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지만, 누구도 한 대표와 거래를 그만두는 사람은 없었다. 한 대표는 상대측에 맞서 가격을 내리거나 하는 일체의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과 그동안의 성과에 대한 프라이드가 대단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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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에 일부 어떤 모습들에 실망감을 안고 베트남 정착을 위해 호치민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정착 초기 베트남 현지인 또는 한인을 대상으로 한 사업에 실패를 거듭했다. 그래도 악다구니로 다시 한국 정비공장을 세우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됐다. 사업이 망하고 빈털터리가 된 한국인 신랑이 베트남 처가에서 돈도 없이 백수로 지내면, 어떤 대접을 받는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속된 말로 병신, 등신 취급과 멸시를 받는다. 한때 아내 쪽 친인척인 직원들의 횡령으로 사업이 망하고 처가살이를 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한 대표는 늘 당당했다. 그가 쌓아오고 보여준 정직과 책임의식 등은 그를 감히 무시할 수 없게 했을 거로 생각한다. 반드시 재기하지 않겠나,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처가 식구들은 돈이 없어도 큰소리를 내는 한국인 사위의 눈치를 봤다. 부모님에게 가난 속에서도 정직과 성실함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는 한 대표는 일체의 비용 없이 정비기술을 교육하는 베트남 현지인 대상 기술학교를 세우는 것이 목표다. 가난하지만 노력하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야기를 갈무리하며 그는 얘기한다.“학교 이름은 내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지을 거네. 그 학교는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거나 다름이 없다네”한 쪽에 정리돼 있는 손때 묻은 공구들과 정비공장에 걸린 사진 속 아버님 얼굴, 환하다.